우리나라 밴드와 일하는 게 어려운 이유
https://www.facebook.com/lee.sungbum.12/posts/10216710221044531
https://www.facebook.com/lee.sungbum.12/posts/10216710449930253
우리나라 밴드와 일하는 게 어려운 이유
이것은 어느 일방의 탓이 아니라, 각자 처한 조건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홍대 클럽에서 공연하는 밴드/아티스트는 아래와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소속사가 있는 아티스트 2. 고정 직업을 갖고 음악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 3.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음악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 4. 다른 직업, 아르바이트, 소속사가 없이 활동하는 아티스트
현재 저희가 우리나라 밴드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1. 일본 아티스트와의 한국 공연 (한국 아티스트의 게스트 출연 또는 연합 공연) 2. 일본 아티스트와의 일본 공연 3. 1,2의 확장된 형태로, 한국 또는 일본을 범위로 한 투어, 공연 4. 한국과 일본 아티스트의 코라보 공연 또는 레코딩 5. 국내외 페스티벌의 출연 (올해는 JUMF2018에 3개 한국 밴드와 업무협약계약을 맺고 진행했는데, 일본/대만의 페스티벌의 섭외 진행도 가능) 6. 일본/대만의 쇼케이스, 프로모션 등의 선전 활동 7. 매니지먼트/프로듀스를 통한 일본 데뷔 및 활동 8. 일본 아티스트와의 한국/일본 이외의 제 3국 활동 9. 기타 등등
위의 활동은, 저희가 유능해서가 아니라, 그 동안의 활동 실적을 통한 네트워크,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 회사, 뮤지션들의 협력으로 가능한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실행한 일도 있고, 실행하지 못한 일도 있습니다만,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실행되지 못한 일들이 많을까요?
우리나라 아티스트들의 사정 때문입니다. 이것은 핑계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소속사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의 스케줄 관리입니다. 소속사의 판단에 따라(음악성을 위한 프로듀스적인 판단, 선전 프로모션을 위한 판단, 상업적인 판단 등) 아티스트의 스케줄을 조정하고 아티스트는 소속사가 지시한 스케줄에 따릅니다.
그러나, 소속사가 없는 아티스트들, 특히 밴드는 소속사가 없어서 더 자유로운 활동, 독립적인 활동이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케줄 관리가 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에 나열한 저희가 가능한 활동을 소속사가 없는 아티스트와 함께 하려면, 아티스트의 스케줄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소속사의 스케줄은 3가지 판단, 즉 음악성의 향상, 아티스트의 지명도 상승, 상업적인 목적에 따라 결정되며, 특히 상업적인 목적, 수익을 얻기 위한 의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소속사가 없는 아티스트의 스케줄은 음악 외의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직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스케줄을 변경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밴드의 경우, 여러 명의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데, 그 역시 쉽지 않습니다. 주 1-2회 밴드가 모여서 합주를 하는 스케줄 이외에 다른 스케줄을 잡는 것 자체도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효과적인 선전, 활동을 위해서는 3-6개월 전에 스케줄이 확정되는 것이 중요, 아니 필수적인데, 소속사가 없는 아티스트의 경우 1-2개월 전의 스케줄 확정도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개인 싱어송라이터면 모를까(이 경우에도 함께 하는 서포트 뮤지션이나 세션 파트의 스케줄 조정의 문제가 있습니다), 밴드는 설령 확정을 하더라도, 멤버 중 1-2명에게 갑작스러운 개인적인 사정(또는 깜빡한 사정)이 생겨서 혼란이 생기는 경우도 잦습니다.
음악 활동에 있어서, 소속사가 없는 아티스트의 경우는 소속사, 즉, 자신의 음악활동을 서포트하는 사람들이 없는 경우보다 더 많은 노력, 영리한 플랜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시간 관리, 스케줄 부분에서 이미 불리한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즉, 아티스트 본인은 다른 일을 하고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음악’이라고 말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 배정의 우선 순위에서 밀립니다. 물론, 생활을 위한 생업이 필요하고, 음악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소속사가 있더라도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 활동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음악이 아니라면, 함께 일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음악 활동으로 어느 정도 이상의 수익 또는 현재 아르바이트나 생업에서 벌고 있는 수익 정도만 생긴다면 다 집어치우고 음악에 올인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꽤 많은데, 음악에서 어느 수준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매우 어렵고,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에만 올인을 해도 될까 말까 한 것입니다. 즉, 리스크가 아주 큰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음악에만 올인하고, 자신의 시간의 전부를 음악에 써도 될까말까한 일인데, 다른 일, 사정에 밀려 스케줄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확보한 스케줄도 실현이 불안하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까요?
‘확실하다면 올인하겠다’라는 말처럼 공허하고, 비겁한 말은 없습니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일, 다른 사정이 우선이고, 겨우 남는 시간에 음악을 하거나 스케줄을 급히 만들면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결국, 소속사가 있는 아티스트와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소속사가 있어서 좀더 안정적일 거다, 더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고, 가장 중요한 스케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소속사가 있는 아티스트는 소속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의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스케줄을 짭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음악성, 인지도를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만, 결국 그 모든 것은 기업의 목표, 수익 극대화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속사가 없는 아티스트들은 개인 사정(직장, 알바, 기타 여러가지 개인적인 볼 일)을 우선해서 스케줄을 짭니다.
경쟁이 될 수 있을까요?
도움을 받거나, 협력을 하려면, 그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스탠바이가 되지 않은 상태의 상대와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문제는 타인이나 세상이 아닌 스스로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입니다.
앞서, 소속사가 없는 아티스트의 경우에 스케줄 확보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강력한 리더가 있다면, 소속사가 없어도 관계없을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강한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있다면 멤버들의 스케줄을 확보, 안정적으로 함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실상은 멤버 중에 가장 바쁜(음악 외의 일로) 사람이 리더인 경우가 많았고, 멤버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밴드 내부에서의 입지가 불안한 사람이 리더를 맡고 있기도 했습니다.
밴드의 리더는 밴드의 음악성의 키를 쥐고 있는 음악적인 리더가 있고, 스케줄 관리 및 매니지먼트와 관련된 일을 맡는 리더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역할이 분리되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대부분 한 사람이 두 가지 역할의 리더를 맡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두 가지를 다 잘 해낼 수 있다면 대단한 리더이겠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리더가 자신의 음악을 밴드를 통해 표현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다른 멤버들은 세션과 비슷한 포지션이 되고, 이런 밴드는 멤버의 탈퇴/가입이 빈번해지기도 합니다.
예전의 밴드마스터와 비슷한 지위가 되는 것이죠.
리더는 밴드의 멤버들과 밴드의 외부에 스스로를 계속 증명해야 하는 위치입니다.
가장 바쁘고,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위치이므로 가능하면 리더는 다른 일(알바나 레슨)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멤버 전원은 사정상 어렵다고 해도, 리더만이라도 음악 활동에 올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밴드 활동 이외의 일, 자신의 생업, 아르바이트, 개인 사정으로 가장 바빠 보이는 사람이 리더이기도 합니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와 자존심이 강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음악 활동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거나,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멤버들에게 유능하다는 신뢰를 줘야 하고,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수를 저지르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몇 번이나 겪은 일인데,
제가 우리 나라 밴드와 일을 할 때, 리더와 연락을 합니다.
언제까지 어떤 자료를 준비해서 제출해 달라고 말하면(보통 2주 전 많게는 1개월 전, 짧아도 1주일전에는 부탁을 하는데), 리더는 바빠서인지 원래 게을러서인지, 매번 마감일 당일에 허둥지둥하고, 마감일에 겨우 맞추거나 마감이 지나서 제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대단한 수익을 얻는 것도 아니고, 우리 나라 밴드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이런 식으로 일이 되면 실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면 해당 밴드의 리더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변명할까요?
저한테는 죄송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경험이 없어서,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아서 그러니, 이해해 달라고 하고, 다음에는 잘하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분들은 다음에도 똑같이 행동합니다.)
하지만, 밴드 멤버들에게는 ‘매번 당일에 뭐를 달라, 제출해 달라고 해서 짜증난다, 미리미리 좀 이야기하지, 나도 바빠 죽겠는데. Sweet Jane이 일을 완전 아마추어처럼 한다. 그래도 내가 별 말없이 다 해줘서 무사히 제출했다’ 는 식으로 말합니다.
심지어는 저희는 미들맨, 즉 중간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어떤 성과가 얻어지면 “Sweet Jane이 한 일 별로 없다, 하도 어설프고 답답해서 내가 직접 그 쪽에 이야기해서 이뤄냈다”고 멤버들에게 말하는 리더도 있습니다.
이런 식의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사실, 제가 우리 나라 밴드들하고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몇몇 분들이 저에게 충고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밴드의 리더나 한 사람한테만 이야기하지 말고, 반드시 멤버 전원을 모와 놓고 이야기를 하셔라. 이야기가 멤버들에게 절대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잘되면 자기 탓, 안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니까. 아무리 성의를 보여서 제대로 이야기를 해도, 이상하게 이야기들을 할 거다. 도와주고, 욕만 듣기 십상이다. 솔직히 아예 그들과 일을 하지 않기를 권하지만, 일을 이미 시작했다면, 한 사람에게만 이야기해서는 절대 안된다, 나중에 상처 받으실거다”
저는 그 분들이 어려운 한국의 밴드씬에서 상처를 많이 받으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겠지만, 안 좋은 일,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을테니까.
저의 대답은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들 인성도 좋아 보이던데. 별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데 설마 그게 왜곡되겠습니까? 다들 바쁜 거 같으니, 리더에게 이야기하는 게 빠르게 진행되겠죠” 였는데, 결과적으로 그 분들 말씀이 옳았습니다.
리더로서는 자신의 실수나 무능을 멤버들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랄 것이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바빠서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또 모르는 건 배워가면서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몇 번 씩이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니, 저도 인간인지라 더 참고 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게 얼마나 비생산적인 과정입니까?
충고해주신 분들의 말씀에 따라, 오프에서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이야기하기는 힘드니,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멤버들을 초대하라는 이야기를 몇 번씩이나 해도, 알았다고만 대답할 뿐, 1개월이 넘게 지나서야 멤버 전원이 아닌 1-2명 더 초대하는 정도로 그치더군요.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제가 운이 없어서가 아니고, 밴드의 리더의 인성이 나빠서도 아니고(제가 재수가 없는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의 인성이 나쁜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일을 하는 프로세스, 최소한의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는 멤버들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해야 하고, 실적을 보여줘야 합니다. ‘어려운’ 한국의 밴드 씬에서 자신이 가장 바쁘고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 다른 일도 해야 하고, 음악적인 성취도 이뤄야 하고, 밴드 외부의 사람들과 비즈니스도 잘한다는 것, 힘들지만 애쓰고 있고,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멤버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어려운 상황을 어렵게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거짓말, 왜곡, 뒷담화, 과장이 뒤따릅니다.
몇몇 기획자 분들도 밴드들의 스케줄 관리나 외부 영업/협력과 관련하여 문제를 느끼고 있어서, 아티스트들의 부담을 덜어줄 시스템의 필요를 이야기하십니다. 그런 업무를 통합해서, 대행해주는 시스템에 관한 것입니다. 이 분들은 밴드나 인디씬에 대한 애정이 크고, 또 씬에서 사업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경험이 많은 분들은 그런 일 자체가 소용없다고 하십니다. 인풋에 대해 제대로 아웃풋이 안 나온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아웃풋이 아주 추악하고 더럽다는 것입니다.
환멸과 회의감만 갖게 된다는 것이죠.
저는 소속사가 없는 밴드들의 경우에는, 멤버들이 매달 얼마 씩이라도 내서, 매니저를 고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바쁘고 힘든데 모든 것을 밴드가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주변에 신뢰하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죠. 멤버들도 다른 일과 사정이 있어서 밴드에 집중할 수 없는 것처럼, 매니저도 다른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은 밴드 매니저 일을 하는 것입니다.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을 정도의 보수는 지급하기가 부담스러울테니, 그런 형태라도 진행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저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몇몇 밴드들에게 구글 캘린더에 향후 스케줄 3-6개월을 기재해서 공유하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서로의 스케줄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니까요.
그러나, 어떤 밴드도 그걸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게을러서, 아니면 계획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흥적인 스케줄만 있는 것이지, 향후 1-2년도 아니고, 3-6개월의 스케줄도 없이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이건, 게으르거나, 계획이 없는 사람들하고는 함께 일할 수 없는 것이고, 함께 일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밴드나 회사와 일을 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서로의 스케줄 확인입니다.
큰 스케줄은 1년, 적어도 반년 치의 스케줄을 공유합니다.
구글 캘린더나 엑셀 자료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그 자료에는 아직 공지되지 않은(즉, 절대 보안을 요하는) 스케줄도 기재되어 있고, 확정이 아닌 협의중인 스케줄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밴드는 자신들과 음악 스타일이나 팬이 겹치는 라이벌 밴드의 스케줄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일본 밴드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나라 아티스트의 경우에도 첫 대화에서 자신들의 향후 스케줄을 알려줍니다.
공연, 해외공연, 레코딩 등 확정된 스케줄, 협의중인 스케줄을, 아직 공개하지 않은 내용까지, 처음 보는, 아니 처음으로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하는 저에게 자세히 알려줍니다.
(이런 밴드, 아티스트들은 한국에서 상당히 성공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지난 주에 사적으로 서울에 왔던 일본 회사의 대표도 그렇습니다.
소속 밴드들의 근황, 새로 계약한 밴드, ‘우리(?!)’ 쪽 사람의 근황과 스케줄을 이야기해줍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스케줄을 공유해야만, 저도 그들의 스케줄을 참고해서 기획을 하고, 제안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을 함께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기초 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밴드, 아티스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선 제안이나 기획을 듣고 싶어합니다. 자신들은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도 합니다.
괜찮은 조건의 제안이면 할 수 있다는 태도인데, 순서가 바뀌어 있는 것 아닐까요?
아티스트 스스로의 목표와 플랜, 스케줄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 맞을 때,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먹구구식의 일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홍대나 밴드 씬의 일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다고 비판합니다.
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질까요?
제가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 ‘밴드 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리네요’라는 답을 자주 받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죠. 제대로 일을 하자는 것인데, 그런 식의 부정적인 응답을 합니다.
모든 일은 리스크가 있고, 음악일은 어떤 일 못지않게 리스크가 큽니다.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줄이고,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는 것이면 분담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몇몇 밴드와 일한 경험을 생각하면, 밴드측은 전혀 리스크를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관련된 리스크입니다.
불안정한 음악에 시간을 쓰는 것보다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더 쓰는 것이 금전적으로는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소속사에 들어간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리스크를 분담한다는 의미입니다.
클럽으로부터 돈을 제대로 못 받고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만, 그 이전에, 클럽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의 리스크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클럽이나 기획자가 충분한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밴드의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를 지는 것 아닐까요?
과거의 밤무대에서는 술 마시고 춤추러 오는 손님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서 밤무대 출연 가수에게 돈을 줄 수 있었습니다만, 라이브하우스, 라이브 클럽은 그런 시스템이 아닙니다.
술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공연을 파는 것입니다.
술 마시러 온 사람들에게 공연을 하는 것과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술을 파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클럽에서 술을 파는 것은 저조한 공연 티켓 판매를 보완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아티스트는 술장사를 도와주려고 공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야기로 샜습니다만, 우리나라 아티스트, 밴드(정확하게 말하면 소속사가 없는 아티스트)와 일하는 것은 마음만으로는 어렵다는 것, 선의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앞서 쓴 글에서 제가 우리나라 밴드와 할 수 있는 일의 종류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말그대로 저희 입장에서 가능한 일이고, 밴드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하나도 실현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저희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 밴드와 일하려는 다른 회사,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처럼 아름답고 즐겁지만, 성공하기 힘든 일을, 자신들 할 것 다하고, 남는 시간에 합주하고 레코딩하고 가끔 공연하는 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음악 활동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의 삶속에서 가장 우선순위를 갖는 일로 여기고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음악 활동 외적인 일로 바쁜 사람들이 어떻게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알바는 빼기 어렵고, 직장의 휴가는 가족 여행에 써야 하고, 회사나 사업의 이런 저런 프로젝트가 걸려 있는 사람들이(게다가 밴드라면 여러 사람들의 사정이 더 얽혀 있는) 어떻게 음악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그 일을 대신해줄 소속사가 없다면, 밴드 스스로, 뮤지션 스스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대신해줄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매니저를 고용해서 일을 맡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직장인 밴드’, ‘주말밴드’로 활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분들은 음악적인 성공이 아니라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하시는 것이니까, 다른 회사나 사람들의 협력 따위는 필요하지 않죠.
‘스케줄’을 어떤 목표, 어떤 우선순위를 갖고 관리하느냐가 첫 번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