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는 이렇게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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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노진구

출판사

발행연도

2015.03.16

상태
읽음
아카이브

https://archive.is/7Z6U1

꽤 오래 전 자칭 홍대 터줏대감에게 들은 이야기다. 홍대는 이제 예전 같지 않다나. 예술가는 월세에 쫓겨 어딘가로 떠났고 남은 것은 술집과 술집을 찾아온 사람들, 그리고 프랜차이즈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진행된지는 꽤 되었고 지금도 홍대는 점차 예전의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다만 문화적 낙후화가 비단 홍대에서만 진행되는 현상은 아니라는 것. 이전 신촌이 그랬고, 지금의 홍대도 그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 다음 핫플레이스에도 이러한 과정은 되풀이될 것이다.

무릇 환경은 유동적으로 변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간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를 차지하는 공간은 그대로 있을지라도 그것을 사용하고 바라보는 시선은 바뀐다. 공간을 제약하는 조건들이 바뀌는 것이다.

말이 쓸데없이 어려우므로 간단한 가상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일종의 문화 생태계를 상상해보자.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들처럼 문화는 소비할 것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한다. 문화가 발달한 곳에서부터 가장 먼저 이동하는 집단은 일군의 예술가들과 소수의 전위적인 문화계 종사자들이다. 유일한 생산자라고 불릴 수 있는 이들은 또 다른 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자원을 찾아 처음 미개척지에 도착한다.

소수의 생산자들이 어느 정도 텃밭을 가꾸면, 그 결실을 소비하기 위한 최초의 후위대(rear-garde)가 도착한다. 이들은 소수 취향에 열광하는 마이너이자 문화자본의 엘리트 또는 계몽 힙스터 부류이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민감하고 섬세한 문화적 소화기관을 갖고 있어서 최초의 생산자들이 만든 것을 이해하고 소비한다. 이제 최초의 생산자들이 만든 잡동사니들은 이 두 번째 부류를 만나 최초로 하나의 문화로서 인정받는다.1

유일한 생산자와 최초의 후위대는 첫 번째 소비 사이클을 이룬다. 생산 시점에서 최초로 경험된 문화는 엘리트 소비자들에게서 '두 번째'로 경험되면서 그것이 가진 전위성(낯섦, 이해하기 힘듬, 받아들이기 어려움)이 해독되기 시작한다. 유일한 생산자와 최초의 후위대가 만든 문화적 결실이 농익을 때 즈음이면, 더 큰 포식자가 문화적 생태계를 찾는다. (여기서 말하는 더 큰 포식자란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능력, 즉 자본을 가진 부류를 말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취미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단계다. 비전문적인 취미꾼들과 힙스터들이 생태계에 등장하고, 후발 생산자들은 그들의 식성에 따라 전위성을 상당 부분 희석시키거나 제거한 가공품을 팔기 시작한다. 이 먹이사슬이 하나의 현상으로 미디어에 노출되면 구경꾼들이 몰려든다. 큰 포식자는 다시 더 큰 포식자들을 부르고, 종국에는 이 먹이사슬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포식자, 즉 가장 자본화되고 규격화된 프랜차이즈, 대형 브랜드들이 들어서는 것이다. 이쯤되면 전위적 문화는 그 야수성과 의미를 잃고 적당히 세련된 구호와 상투성으로 포장된 채 대중 일반에게 공급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문화는 공동체 내에서 용인되며, 한창 불살라 다음 유행이 올 때까지 '대세'라는 이름으로 전파된다. (물론 여기까지 커지지 못한 문화는 마이너 취급되거나 금방 잊혀진 무언가로 남을 것이다.) 문화 생태계의 덩치가 커질수록 종의 다양성이 소멸되는데, 이것은 규격화된 생산과 규격화된 소비 시스템이 발생시키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하다. 왜냐하면 생산자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를 소량 생산하는 것보다 하나를 많이 생산하는 것이 수월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를 아는 것보다 하나만 아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오늘날 소비는 곧 지식이다. 얼마나 수많은 매거진이 물신주의를 조장하고 표방하는지 보라) 최초로 먹이를 제공하는 유일한 생산자는 일부만 살아남거나 대부분 멸종된다. 자연 생태계와 달리, 문화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문화상품기업과 프랜차이즈들은 최초의 생산자들에게 남겨주는 것이 별로 없다.

이렇게 문화적 추방을 당한 전위대들은 다시 새로운 공간을 찾아 떠나고, 그 뒤를 따라 다시 후위대가 이탈한다. 그 뒤에 남는 것은 상업화된 생산자와 소비자 뿐이다. 비단 문화뿐 아니라 개발이나 건축과 같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들은 대체로 이런 흥망성쇠를 겪는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이것은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전 홍대가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들이 추억하는 홍대의 거리가 과연 최초의 모습이었을까? 어쿠스틱 기타와 알록달록한 레깅스가 유행하던 그 시점, 홍대하면 '젊음의 거리'라는 상투어를 떠올리게 된 그 시점부터 홍대는 이미 종적 다양성을 잃고 자본의 생태계에 합류하고 있었다. 프랜차이즈와 술집, 대형 상가는 결국 이들이 풍기는 달콤한 냄새를 맡고 달려온 막차 손님에 지나지 않는다.

첨언하자면, 이것이 문화적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 순리를 따를 필요는 없다. 인간의 문명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거스르면서 건설되지 않았나. 다만 이러한 최상위 포식자의 도래를 막을 힘은 우리 개인에게는 없다. 결국 행정과 정치가 답이다. 마포구 구청, 지역의원은 각성하라.